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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학기, 마지막 기말 과제를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강의실에서 수업 한 번 듣지 못한 나의 마지막 학기가 끝이 났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대학생활이 이젠 정말로 끝이 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학생활이었다. 평범하면서도 사실 엄청나게 다사다난한 그런 대학생활이었다.
'~'가 핵심이다 1학년 송도 생활 1년을 제외하고는 신촌, 연희동 일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대학생활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 서울 여기저기 여행하듯 쏘다닐 법도 한데, 나는 약속이 없는 한 절대 신촌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지난 3년하고 6개월, 매 시간, 매 분, 매 초 나의 위치를 지도 위에 점 찍어보면 서울, 그것도 신촌 안에만 무수히 많은 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다. 지도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신촌 속에서도 점이 제일 많이 찍혀 있는 곳. 그 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대명꼬~기일 것이다.
삼겹살은 항상 옳다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연극 동아리이다. 신촌 새내기 시절 동아리에 들어와 첫 개총 뒷풀이를 했던 장소가 바로 대명꼬기였다. 대통주에 미쳐 있는 동아리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뒷풀이 장소가 대명꼬기였다. 공연 준비의 시작 뒷풀이부터 그 과정, 마지막 공연 후 뒷풀이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늘 대명꼬기를 향했다. 그 무수한 발걸음의 증거라도 되듯 대명꼬기 구석구석에는 우리 동아리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영롱한 대통주 동아리 사람들이 미쳐 있는, 단연코 내가 제일 애정 하는 술, 대통주. 아직 대통주를 마셔보지 못한 친구가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표한다. 다른 가게에는 대나무통술, 술병 위에는 죽심이라 이름 붙여져 있지만 대명꼬기 간판에 대통주라 되어있으니 그 술은 대통주인 것이다. 대잎추출액이 살짝, 사아알짝 들어있다는 대통주는 11% 도수에 묘한 향과 함께 술술~ 부드럽게 넘어간다. 사장님이 대통주 병 바닥을 고무 망치로 몇 번 치시면 살얼음이 사아악 생긴다. 바야흐로 살얼음 대통주. 그것은 오직 대명꼬기에서만 마실 수 있는 세상 제일 맛있는 술이다. 대통주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면 고기가 익기도 전에 한두병은 클리어한다. ‘술 향이 별로 안나는데?’ 하고 얕봤다가는 진짜 기어 나갈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생삼겹살 2인분 대통주 1병 세트가 15000원이라니. 하늘 같은 사장님의 은혜는 쌓여가는 대통주 병 수로 보답하는 수밖에 없다.
추억의 도시락, 이거 안먹으면 진짜 바보다 하나의 연극 공연을 준비할 때 작게는 20명, 많게는 50명의 사람들이 두세달간 매일 만난다. 공연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을 땐 원없이 끈끈하던 그 관계는, 마지막 공연 뒷풀이 후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50명 모두와 두루 친해질 수 없고,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않는 동아리 특성 상 같은 사람들과 또 공연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즉 두세달간 죽고 못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공연 뒷풀이 이후 볼 일이 없다. 끝내 남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같은 자리에서 같은 대통주를 마시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다. 21살 여름, 첫 공연, 막공 뒷풀이. 대명꼬기 간판이 떨어지도록 애달프게 울던 나. 공연이 반복되고 이별이 반복되면 무뎌질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성장해 가며 마를 줄 알았던 내 눈물샘은 여전히 전성기이고 나는 아직도 이별이 힘들다. 오히려, “다음에 꼭 연락해서 만나자”는 말의 허황됨을 알기에,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일 수 있음을 더 잘 알기에, 시간이 흐르고 성장해 갈수록 이별은 한없이 더 아프기만 하다.
나와 함께 간다면 가끔가다 먹을 수 있는 서비스 계란탕, 그니까 대명꼬기는 나랑 가자구요 연극 동아리 뒷풀이로 처음 와 대명꼬기와 대통주에 정을 붙인 나는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을 대명꼬기에 데려왔다. 매번 새로운 손님을 잔뜩 데리고 오는 나는 사장님의 최애 단골 손님이 되었다. 연극 동아리뿐만 아니라 과, 학회, 대외활동 등 내가 속해 있던 많은 단체들은 나의 주도로 대명꼬기에 왔고, 그 중 다수의 모임 마지막 뒷풀이는 대명꼬기에서 이루어졌다. 수많은 모임 속 수많은 사람들은 그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과거 그 순간 내가 그들을 사랑한 것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현재 그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꼭 다시 만나자 약속했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애정이 있었고, 있지만, 인생이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본디 타고나기를 잔정과 눈물이 많은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참 많은 시간과 눈물이 필요했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눈물 없는 이별은 없었다. 대명꼬기는 내가 가장 많은 이별을 한 장소이다. 동시에 내가 가장 많이 울었던 장소이다.
너무 많이 가서, 안 앉아본 테이블이 없고, 안 앉아본 자리가 없는 대명꼬기. 자주 가는 장소가 있으면 그 장소에 추억이 쌓이기 마련인데, 대명꼬기에는 자리마다 추억이 쌓여 있다. 모든 테이블, 모든 자리에 울고 웃는 내가 앉아있다. 모든 테이블, 모든 자리에 21살부터 24살의 내가 빼곡하게 앉아있다. 내가 앉은 옆자리엔 지난 대학 생활 속 내가 한없이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있다. 그들과 내가 울고 웃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여 있고 쌓여 있다. 그렇기에 대명꼬기 가게를 둘러볼 때면 내 마음은 뻐근하게 아려 온다.
나의 모든 웃음과 울음, 만남과 이별을 지켜본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사장님. 신촌이 나의 고향이라면, 사장님은 나의 고향 엄마이다. 추운 겨울 날 내 목이 휑하다며 코트 옷깃을 잡아당겨 옷핀으로 고정해주는 사장님이다. 내가 유독 취해 보이는 날이면 내 손 붙들고 구석으로 가 몰래 꿀물을 타주는 사장님이다. 내가 술에 얼큰하게 취해 20분간 끌어안고 있어도 따뜻하게 마주 안아주는 사장님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데려가면 내 자랑을 잔뜩 늘어놓는 사장님이다. 엄마가 아기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 듯 사장님은 21살의 내가 24살의 나로 성장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 봐준 사람이다. 단골 손님으로 시작해 깊은 정을 쌓아 진심 어린 걱정을 주고받는 관계. 사장님은 나의 신촌 엄마이다.
“보경이는 졸업하고도 꼭 올거지?”
“사장님, 저 대학원 가요~ 앞으로 2년은 더 신촌에 있을 거에요~”
“대학원 졸업 후에도 말야. 그 때도 와 줄거지?”
내가 사랑하는 신촌, 내가 사랑하는 학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아직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기로 결정했다. 남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를 물으면 전문성을 갖추려고요 따위의 대답을 하곤 하지만 사실은 신촌 때문이다. 나는 신촌에 좀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원래라면 떠나가야 할 사람이 머무는 사람이 되기로 했기에, 이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떠나가는 과정을 하나 둘 지켜봐야 한다. 신촌에 머물면서 신촌을 떠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내줘야 한다. 늘 사람이 복작복작 거리는 대명꼬기는 나만의 고향이 아니고, 사장님은 나만의 고향 엄마가 아니다. 같은 자리에서 긴 시간 장사해 온 사장님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신걸까. 떠나간 뒤 다시 오지 않는 이들을 향한 기다림을, 또 그리움을 견디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4학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매번 나에게 졸업해도 또 올 거냐고 묻는 사장님을 보며 사장님도 이별이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는 지나온 인생 보다도 너무나 많은 이별이 남아있다. 쌓여가는 대통주와 함께, 쌓여가는 추억과 함께, 쌓여가는 시간과 함께 이별에 좀 더 의연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대학원 생활을 끝마치고는 어엿하게 성장한 모습으로 미련 없이 떠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잠시 미뤄둔 신촌과의 이별이 눈물 없이 웃음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대명꼬~기 ]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27-15
02-362-1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