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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주민으로 지낸 지 4년차에 접어들며 연희동 일대를 산책하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매일 걸어 다녀 지리는 익숙한 듯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구석구석 매번 새롭고 낯선 연희동은 참으로 매력적인 산책로이다. 지난 가을, 연희동의 한적한 주택가를 거닐다 그 길의 끝에서 연희동 과자점을 마주쳤다. 과자점이라는 다소 정겨운 이름에 호기심이 일어 슬며시 들어갔던 것을 시작으로 어느덧 단골이 되어 자주 드나들었다. 세련된 건물 속 젊은 사람들이 늘 북적이는 근처 연희동 카페들과는 다르게, 연희동 과자점은 세월과 취향이 드러나는 인테리어와 연령대가 높은 동네 주민들이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연희동에 잠시 놀러 온 사람들의 공간이 아닌, 연희동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연희동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 연희동 과자점.
건물 밖 나무 계단을 오르고 테라스 자리를 지나 가게로 들어서면 햇볕이 잘 드는 밝고 깔끔한 내부와 형형색색 가득한 과자 봉지들, 달콤한 와플 냄새가 반겨준다. 아몬드 와다닥, 피스타치오 오봉봉이, 생강 돌돌 등 슬며시 웃음이 나는 다소 귀여운 이름의 과자 십여 종류가 눈 앞에 펼쳐진다. 100% 우리 밀과 최고급 버터로 만든 수제 한국 전통과자로 한국 문화재단에 선정되었다는 자부심 어린 안내도 곳곳에 붙어 있다. 가게 한편에 놓인 와플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플레인 외에도 시나몬 와플, 크림치즈 와플, 딸기잼 와플 등 어덟 종류의 와플이 모두 250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과자 하나 또는 와플 하나와 음료를 함께 주문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다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내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층과 같은 가게라고 믿을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면과 자리마다 다르게 생긴 전구의 어두운 노란 조명. 공간 내부에 가득한 인조 식물들 또 진짜 식물들. 앤틱한 파란색 가죽 의자와 오래된 TV 모니터, 피아노와 커다란 전축. 인조 잔디가 깔린 화장실과 장미 조화가 감싸고 있는 휴지꽂이.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뜬금없는 조화를 이룬다. 여러 번 방문하여 익숙한 듯하다 가도 자세히 구석구석 살펴볼 때 마다 새롭고 낯선 것이 볼수록 연희동을 퍽 닮은 공간이다.
평소 단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장소가 과자점인만큼 방문할 때 마다 과자 또는 와플을 꼭 하나씩 먹어본다. 겉바속촉. 이곳의 와플은 내가 이제껏 살면서 먹어본 와플 중 단연 1등이다. 와플 덕후 친구도 역대급이라고 인정하였으니 언젠가 꼭 먹어 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다양한 종류의 과자도 먹어보았는데 하나같이 단맛이 과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고소한 것이 참 맛있다. 창문 밖 연희동 풍경을 바라보며 달달한 디저트 한 입에 쌉사름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호록 마시며 여유를 느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커다란 창문 앞 자리이다. 창문 밖으로 연희동 주택가 일대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CD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창문 너머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 잡념에 잠기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바로 앞 주택 정원에 있는 나무와 꽃이 계절에 따라 어떤 색으로 물드는가 관찰한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햇볕을 쐬고 있는 길냥이와 누가 더 오래 앉아있나 내기한다.
각기 다르게 생긴 집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미래 나의 집을 상상한다. 음 우리 집은 왼쪽 위 집처럼 세모난 다락방이 있어야 하고, 오른쪽 앞 집처럼 커다란 차고도 하나 있고. 아, 정면 집처럼 커다란 나무도 있어야지. 나무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어서 아침에 새소리 들으면서 깨면 좋겠다. 우리 집에도 길냥이들이 찾아와 햇볕을 쐬면 내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텐데. 무엇보다도 꼭 이곳 연희동처럼 햇볕이 따스한 여유로운 동네에 살아야지.
건강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과자를 보면 소중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오다 주었다며 갑작스레 건네면 환한 미소로 대답해 줄 얼굴들이 눈 앞에 선하다. 남녀노소 모두 선호할 맛이니 고르기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로도 딱 좋을 듯하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연희동 과자점의 전통 과자는 경복궁 등 한국 대표 명소에서도 판매되고 있었다. 몇몇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으며 인터넷으로도 주문이 가능하다. 이런 유명(?) 고급(?) 과자 브랜드의 본점이 연희동 산책길의 끝에 이리도 뜬금없고 다정하게 있다니. 새삼 연희동이란 얼마나 놀랍고 매력적인 공간인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연희동 과자점 : 강성은 명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로 25길 29 2층
연중무휴 오전 10시 ~ 밤 10시
02-333-2622